이투데이 2015.06.04.
대학교 앞 거리는 변화무쌍하다. 철 따라 유행 따라 한 해에도 수많은 점포들이 문을 열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특히 몇 년 전부터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그렇다.
하지만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 앞엔 30여년째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카페가 있다. 1983년 문을 연 커피전문점 ‘터방내’다. ‘집 터’란 뜻으로 이름을 붙인 ‘터방내’는 이곳을 찾는 학생들보다 더 나이를 먹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오가며 닳아버린 나무 계단을 조심스레 밟고 내려가면 1980년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전경이 펼쳐진다. 빨간 벽돌로 쌓은 아치형의 칸막이, 전등갓에서 내려오는 붉은 백열등 빛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설탕과 프림을 담은 병 한편엔 낙서가 가득하다. 지금은 중년이 됐을 청춘들의 낙서 위로 그들의 아들, 딸일 수도 있는 누군가의 풋풋함이 새로이 그려진다.
갈색의 낡은 소파에 앉아 느린 선율의 클래식과 함께 커피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마저 느리게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곳의 모든 커피는 증기의 압력으로 커피를 뽑아내는 사이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80년대 유행하던 방식이다.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지만 맛이 진하고 목넘김이 부드럽다.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상소는 “느림은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이며,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나이와 계절을 아주 천천히 아주 경건하게 주의 깊게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지금이 트렌드를 따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라고 한다. 바쁜 삶에 숨이 막힐 때 이따금 ‘터방내’에 들러 상소가 된 기분을 느껴 보자.